남몰래 흐르는 눈물

조회 수 11982 추천 수 0 2011.01.21 21:13:05


남몰래 흐르는 눈물
오페라 <사랑의 묘약> 제2막에서 주인공 네모리노가 부르는 아리아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별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門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멧새 소리 / 백석







가무락조개 난 뒷간거리에
빚을 얻으려 나는 왔다
빚이 안 되어 가는 탓에
가무래기도 나도 모도 춥다
추운 거리의 그도 추운 능당쪽을 걸어가며
내 마음은 웃줄댄다 그 무슨 기쁨에 웃줄댄다
이 추운 세상의 한 구석에
맑고 가난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내가 이렇게 추운 거리를 지나온 걸
얼마나 기뻐하며 락단하고
그즈런히 손깍지베개하고 누어서
이 못된 놈의 세상을 크게 크게 욕할 것이다


가무래기의 락樂/백석







눈이 오는데
토방에서는 질화로 우에 곱돌탕관에 약이 끊는다
삼에 숙변에 목단에 백복령에 산약에 택사의 몸을 보한다는 六味湯이다
약탕관에서는 김이 오르며 달큼한 구수한 향기로운 내음새가 나고
약이 끊는 소리는 삐삐 즐거웁기도 하다

그리고 다 달인 약을 하이얀 약사발에 밭어놓은 것은
아득하니 깜하야 萬年옛적이 들은 듯한데
나는 두손으로 고히 약그릇을 들고 이 약을 내인 옛사람들을 생각하노라면
내 마음은 끝없이 고요하고 맑아진다


탕약(湯藥)/백석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청시(靑枾) / 백석





.
.
.

너무 아름다운 것
너무 완벽한 것
너무 성스러운것은 고통스럽다.
바라보기가 혹은 지키기가....
그것은 슬픈 행복이다.

-빅토르 위고



^^

겨울 밤
눈은 푹푹 나리고
눈은 푹푹 나리고
눈은 푹푹 나리고....눈은 계속 나리고...


김귀엽

2011.01.21 22:43:30
*.143.66.161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김귀엽

2011.01.21 22:50:43
*.143.66.161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수라(修羅) / 백석

김귀엽

2011.01.21 22:59:27
*.143.66.161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 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 태어나서 문학할거야'

-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 / 이생진



김귀엽

2011.01.21 23:36:58
*.143.66.161




음악에 취하고
시에 취하고
못다한 사랑에 취하는 밤입니다.

더불어 행복한 밤이기도 합니다.
굳나잇!

영이

2011.01.22 15:49:03
*.168.125.107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나 취했노라
-노리다께 가스오에게 /백석

영이

2011.01.22 16:06:28
*.168.125.107




파를 드리운 백석
백이라는 성에, 석이라고 불리는 이름의 시인
나도 쉰세 살이 되어서 파를 드리워 보았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
벌써 스므 해라는 세월이 흘렀구나
벗, 백석이여,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십시오
백白이라는 성과 석石이라는 이름의 조선의 시인


파/노리다께 가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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