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외출 / 최은묵

조회 수 830 추천 수 0 2014.05.22 17:32:28

밤 외출 / 최은묵


문 없는 방

이 독특한 공간에서 밤마다 나는

벽에 문을 그린다

손잡이를 당기면 벽이 열리고 밖은 아직 까만 평면

입구부터 길을 만들어 떠나는

한밤의 외출이다

밤에만 살아 움직이는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문을 닫고 잠들었다

나도 엄마 등에서 잠든 적이 많았다

엄마 냄새를 맡으며 업혀 걷던 시절엔

갈림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

나의 발은 늘 여유로웠다

어둠에서 꿈틀대는 벽화는 불면증의 사생아

내가 그린 길 위에서 걸음은 몹시 흔들렸다

걸음을 디딜수록 길은 많아졌고

엄마 등에서 내려온 후로

모든 길에는 냄새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열린 벽, 문 앞에 멈춰 냄새를 맡는다

미리 그려둔 여름 길섶

펄럭 코끝에 일렁이는 어릴 적 낯익은 냄새

오늘은 그만 걷고 여기 가만히 누워

별을 그리다 잠들 수 있겠다

하늘에 업힌 밤

오랜만에 두 발이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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