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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의 약속 / 김명수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같이 초록 잎을 피워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같이 눈보라를 견뎌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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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 / 오규원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

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에 돕-돕-돕-돕 떨

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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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길 / 오규원

 

 

여러 곳이 끊겼어도
길은 길이어서
나무는 비켜서고
바위는 물러앉고
굴러 내린 돌은 그러나
길이 버리지 못하고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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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나비 / 오규원

 


나비 한 마리 급하게 내려와
뜰의 돌 하나를 껴안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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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 오규원

 


며칠 동안 멧새가 긴 개나리
울타리 밑을 기고 깝죽새와
휘파람새가 어린 라일락 가지와
가지를 옮겨다니더니
오늘은 새들이 하늘을 살며
뜰을 비워놓았다
그사이 단풍나무는
가지 끝과 끝에서 잎이 뾰족해지고
감나무는 잎이 동글동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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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 오규원

 


라일락 나무 밑에는 라일락 나무의 고요가 있다
바람이 나무 밑에서 그림자를 흔들어도 고요는 고요하다
비비추 밑에는 비비추의 고요가 쌓여있고
때죽나무 밑에는 개미들이 줄을 지어
때죽나무의 고요를 밟으며 가고 있다
창 앞의 장미 한 송이는 위의 고요에서 아래의

고요로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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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 / 오규원

 


칸나가 처음 꽃이 핀 날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
대신 한 마리 잠자리가 날아와
꽃 위를 맴돌았다
칸나가 꽃대를 더 위로
뽑아올리고 다시
꽃이 핀 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음날 오후 소나기가
한동안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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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 오규원


남산의 한 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당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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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탁 / 이정록

 


어미의 부리가
닿는 곳 마다

 

별이 뜬다

 

한번에 깨지는
알 껍질이 있겠는가

 

밤하늘엔
나를 꺼내려는 어미의
빗나간 부리질이 있다

 

반짝, 먼 나라의 별빛이
젖은 내 눈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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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간다 / 박제영

 


횡성 간다는 말은
횡성 지나 원주 간다는 말


횡성 간다는 말은
횡성 지나 영월 간다는 말


새말 나들목 나가기 전에 누군가는 자작나무숲 미술관을 잠시 거닐겠지만
횡성 나들목 나가기 전에 누군가는 횡성한우곰탕 한 그릇 비우고 가겠지만


횡성 간다는 말은
횡성을 지나간다는 말


잠시 머물다 마침내 지나가야 하는
우리 모두 횡성을 지나고 있을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