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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강물

 


 다친 달팽이를 보거든
 섣불리 도우려고 나서지 말아라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성급한 도움이 그를 골나게 하거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벗어난 별을 보거든
 별에게 충고하지 말고 참아라
 별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ㅡ장 루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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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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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 / 김기주 

 

절간 소반 위에 놓여 있는
금이 간 화병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물을 더 부어 봐도
화병을 쥐고 흔들어 봐도
물은 천천히, 이게
꽃이 피는 속도라는 듯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무 일 없는 외진 방안
잠시 핀 꽃잎을 바라보느라
탁자 위에 생긴 작은 웅덩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잎보다 키를 낮출 수 없는지
뿌리를 보려하지 않았다


한 쪽 귀퉁이가 닳은 색 바랜 소반만이
길 잃은 물방울들을 돕고 있었다
서로 붙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물방울들에게,
가두지 않고도 높이를 갖는 법을
모나지 않게 모이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릎보다 낮은 곳
달빛 같은 동자승의 얼굴이
오래도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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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나태주

 

너무 멀리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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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 / 서정홍

 

 

"순동 어르신,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산밭에 이름 지어 주러 간다네."

 

"산밭에 이름을 짓다니요?"

 

"이 사람아, 빈 땅에

배추 심으면 배추밭이고

무 심으면 무밭이지.

이름이 따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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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일 / 나태주

 

 

골목길에서 만난

낯선 아이한테서

인사를 받았다

 

안녕!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하늘에게 구름에게

지나는 바람에게 울타리 꽃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문간 밖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순한 얼굴의 개에게도

인사를 한다

 

너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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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도 / 이생진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눈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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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 박영희

 

 

종아리를 걷으라 한다

 

혹시 너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누를 범한 일은 없었나,
그 잘못들 죄가 돼버린 건 아닌가 하여
불혹의 종아리를 걷어 올렸더니

 

차일싹!
차알싹!

 

수평선이 핏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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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과 시인 / 이생진

ㅡ만재도·86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봤다고 했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짊어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 봤느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했더니
시는 어디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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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의 시간/나태주

     

     

    보아주는 이 없어서

    더욱 아리따운 아낙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