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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나태주

 

너무 멀리 가지 말아라
사랑아

모습 보이는 곳까지만
목소리 들리는 곳까지만 가거라

돌아오는 길 잊을까 걱정이다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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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짓기 / 서정홍

 

 

"순동 어르신,

이른 아침부터 어디 가세요?"

 

"산밭에 이름 지어 주러 간다네."

 

"산밭에 이름을 짓다니요?"

 

"이 사람아, 빈 땅에

배추 심으면 배추밭이고

무 심으면 무밭이지.

이름이 따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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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일 / 나태주

 

 

골목길에서 만난

낯선 아이한테서

인사를 받았다

 

안녕!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하늘에게 구름에게

지나는 바람에게 울타리 꽃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문간 밖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있는

순한 얼굴의 개에게도

인사를 한다

 

너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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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도 / 이생진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운 것이
없어질 때까지
뜬눈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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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 박영희

 

 

종아리를 걷으라 한다

 

혹시 너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누를 범한 일은 없었나,
그 잘못들 죄가 돼버린 건 아닌가 하여
불혹의 종아리를 걷어 올렸더니

 

차일싹!
차알싹!

 

수평선이 핏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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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꾼과 시인 / 이생진

ㅡ만재도·86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봤다고 했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짊어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 봤느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했더니
시는 어디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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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의 시간/나태주

     

     

    보아주는 이 없어서

    더욱 아리따운 아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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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 나 혼자 / 이생진

 

 

앞문을 열어 봐도 주인이 없고
뒷문을 열어 봐도 주인이 없어
선착장에 한참 서 있다 돌아와서
또 그런 식으로
앞문을 열어 봐도 사람이 없고
뒷문을 열어 봐도 사람이 없어
선착장에 한참 서 있다 돌아와서
또 그런 식으로
이 섬도 이 방도 나 혼자
그저 실컷 나 혼자
앞문을 열어 봐도
뒷문을 열어 봐도
그저 나 혼자
실컷 나 혼자

 

 

 

영이
댓글
2013.08.10 22:58:05

그저 나 혼자
실컷 나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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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 고은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발 자옥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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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자유 / 김유석

 


황망히 뛰지 말 것, 실밥처럼 드르륵 뜯겨질 수 있으므로

 

모퉁이와 모퉁이를 누벼 만든
오래 입은 옷 같은 협궤
설거나 곰곰이 두리번거리지 말 것

 

튀밥 냄새 나는,
모든 것들을 조금 부풀어 보이게 하는 하오
수선집 재봉틀 소리가
내리막처럼 보이는 오르막 도깨비 길목을 밟아가는
네 시 방향으로부터 그늘이 지는 도시의 막후에서

 

함부로 침 뱉지 말 것, 내 그림자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뫼비우스의 띠일 뿐인 생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거나
오줌을 갈겨 본 적 있다면
동전처럼 불쑥 뛰쳐 구르는
노는 아이들 소리에 놀라지 말 것

 

내일 때문에 늙어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밤에만 문을 여는 만화점 모퉁이, 혹은
문득 막다랐다 싶은 집 앞
결코 앞서는 법 없이 바래다주는 불손한 기척들

 

헛기침으로 딱 한 번 돌아다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