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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도 · 나 혼자 / 이생진

 

 

앞문을 열어 봐도 주인이 없고
뒷문을 열어 봐도 주인이 없어
선착장에 한참 서 있다 돌아와서
또 그런 식으로
앞문을 열어 봐도 사람이 없고
뒷문을 열어 봐도 사람이 없어
선착장에 한참 서 있다 돌아와서
또 그런 식으로
이 섬도 이 방도 나 혼자
그저 실컷 나 혼자
앞문을 열어 봐도
뒷문을 열어 봐도
그저 나 혼자
실컷 나 혼자

 

 

 

영이
댓글
2013.08.10 22:58:05

그저 나 혼자
실컷 나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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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 고은

 

 

저물어 가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하루가 저물어
떠나간 사람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

 

오 하잘것없는 이별이 구원일 줄이야

 

저녁 어둑발 자옥한데
떠나갔던 사람
이미 왔고
이제부터 신이 오리라
저벅저벅 발소리 없이

 

신이란 그 모습도 소리도 없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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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자유 / 김유석

 


황망히 뛰지 말 것, 실밥처럼 드르륵 뜯겨질 수 있으므로

 

모퉁이와 모퉁이를 누벼 만든
오래 입은 옷 같은 협궤
설거나 곰곰이 두리번거리지 말 것

 

튀밥 냄새 나는,
모든 것들을 조금 부풀어 보이게 하는 하오
수선집 재봉틀 소리가
내리막처럼 보이는 오르막 도깨비 길목을 밟아가는
네 시 방향으로부터 그늘이 지는 도시의 막후에서

 

함부로 침 뱉지 말 것, 내 그림자에 떨어질 수 있으므로

 

뫼비우스의 띠일 뿐인 생의 담벼락에
낙서를 하거나
오줌을 갈겨 본 적 있다면
동전처럼 불쑥 뛰쳐 구르는
노는 아이들 소리에 놀라지 말 것

 

내일 때문에 늙어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므로

 

밤에만 문을 여는 만화점 모퉁이, 혹은
문득 막다랐다 싶은 집 앞
결코 앞서는 법 없이 바래다주는 불손한 기척들

 

헛기침으로 딱 한 번 돌아다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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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 이문구

 

 

큰 바람이 일고 싶은지
저 먼 산기슭에
자욱한 는개같이
바람꽃이 피었다.
아기 바람이 일면
큰 바람이 일어서
아기의 말을
아빠가 더 잘 듣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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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나를 들어 올린다 / 손택수

 

                                   

구두 뒤축이 들렸다 닳을 대로 닳아서

뒤축과 땅 사이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공간이 생겼다

깨어질 대로 깨어진 구두코를 닦으며

걸어오는 동안, 길이

이 지긋지긋한 길이

나를 들어 올리고 있었나 보다

닳는 만큼, 발등이 부어오르는 만큼 뒤꿈치를 볼끈

들어 올려 주고 있었나 보다

가끔씩 한쪽으로 기우뚱 몸이 기운다는 건

내 뒤축이 허공을 딛고 있다는 얘기

허공을 디디며 걷고 있다는 얘기

이제 내가 딛는 것의 반은 땅이고

반은 허공이다 그 사이에

내 낡은 구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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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살던 백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느티나무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은 연이어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밤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은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다니는 하루 수백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성태산까지 나의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을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의 영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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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나무/정희성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을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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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 김강태

 

 

꽃 지는 소리마저 없다
언젠가 꽃이 열렸는지 알 수가 없다
꽃이 없다
그림자를 벗어 던지고 던진 꽃잎이 없다
새끼를 밴 아픔이 없다
마지막 흘린 땀자욱도 없다
비어 있지는 않지만
내가 없으니 모두가 없어라
구름꽃 무늬진 바다인가 저 머얼리
문득 바람이 푸르르니 보인다
스스로 없다 답하는 이 없다
보일 듯 말 듯
꽃 지는 소리마저 없다
꽃의 자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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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 김강태

 


춥지만, 우리
이제
절망을 희망으로 색칠하기
한참을 돌아오는 길에는
채소 파는 아줌마에게
이렇게 물어보기
 
희망 한 단에 얼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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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꽃 / 김용택

 


수천 수만 송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며
나도 한송이 들국으로
그대 곁에
가만가만 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