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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 마종기

 

 

산들바람 한 줄기
마당을 지나
가지런히 놓인
신발 앞에 머물고

 

보스락보스락
가랑잎
신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혼자
맴돌고

 

걸어서 가는 것 보다
날아가는 게
더 신날거야

 

바람은
가랑잎 데리고
함께 떠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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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환 / 심호택

 

 

머릿장 빼다지에서 훔친
불그죽죽한 오십환짜리는
제법 쓸모가 있었다

 

애들하고 콩사탕 박하사탕을 물고
마을로 들어오는데

논바닥에 해오라기 마냥 엎드린
어머니와 형이 보였다

 

논두렁에서 암만 기다려도
알은체하지 않고 귀먹은 중마냥
하던 일만 하고 있었다

 

답답해서 내가 먼저 말 꺼냈다
공연히 큰 목소리로
내가 안 끄내갔다 말여!
정말 안 끄내갔단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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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솔 그늘에 앉아 / 이제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랏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빛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 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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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낮잠/이재무

     

    꽃 피운 목련나무 그늘에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 펼쳐놓는다
    아니 시는 건성으로 읽고
    행간과 행간 사이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햇살은 낱알로 내려 뜰 가득 고봉으로
    소복 쌓이고 시집 속 봄볕에
    나른해진 글자들
    겯고 튼 폼 뒤틀다가 하나 둘 셋
    느슨하게 깍지를 풀고
    꼬물꼬물, 자음과 모음 벌레 되어 기어나온다
    줄기와 가지 따라 오르고
    꽃 치마 속 파고들기도 한다
    간지러운 듯 나무가 웃고
    꽃은 벙글벙글
    이마에 책 쓰고 누워
    배 맛처럼 달고 옅은 꽃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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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그림자가 / 나희덕




소나기 한 차례 지나고

과일 파는 할머니 비 맞으며 앉아 있던 자리

사과 궤짝으로 만든 의자 모양의

고슬고슬한 땅 한 조각

젖은 과일을 닦느라 수그린 할머니의 둥근 몸 아래

남몰래 숨어든 비의 그림자

자두 몇 알 사면서 훔쳐본 마른 하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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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렴 / 강현국

    큰일났다, 봄이 왔다
    비슬산 가는 길이 꿈틀거린다
    꿈틀꿈틀 기어가는 논둑 밑에서
    큰일났다, 봄이 왔다 지렁이 굼벵이가 꿈틀거린다
    정지할 수 없는 어떤 기막힘이 있어
    色쓰는 풀꽃 좀 봐
    伐木丁丁 딱따구리 봐
    봄이 왔다, 큰일났다
    가난한 내 사랑도 꿈틀거린다


     

클났어요. 봄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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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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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사람, 소리 / 이면우

      

     

    '열화당 사진문고' 『최민식』을 공사장 오가는
    버스 속에서 처음 펼쳐보다 그땐 눈 밝아
    '부산 부민동 1963'의 빼곡한 집들 가볍게 훑고 지나쳤다.

     

    그곳 사람들 처음 만난 건 십년 뒤 돋보기 쓰고 나서다
    서가 먼지 털다 다시 그 집들 들여다보다 움찔했다
    거기 많은 이들, 놀고 일하고 공부하고 아프며
    하늘 가까운 동네를 살아내는 중이다 나는 확대경까지 보태
    모든 집, 마당, 골목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밑에서
    위로 두번째 줄, 왼쪽부터 다섯번째 집
    어둔 방안에서 햇볕 비치는 이쪽 향해 앉은걸음으로
    막 나오려는 이를 보았다 그가 무슨 말 하려는 순간 찰칵
    영영 멈춰버렸다고 그게 자꾸 궁금했다.

     

    그때, 가까이서, 약 먹을 물 한 그릇 떠달라는 아이 엄마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은 2012-11-29-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본인의 허락을 맡고 몇 컷 촬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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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 구비 만 구비 / 이승훈

 

 

  천 구비 만 구비 돌아 그대 만나면 그대 말 없이 선물만 주네 푸른 바람도 그대 선물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도 그대 선물 카페 창 너머 맑은 하늘도 그대 선물 카페도 카페도 그대 선물이다 나 그대 선물 받고 한 세상 사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천 구비 만 구비가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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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찌 꽃 한송이만 있겠는가

저쪽

마른 강바닥에도 아랑곳하게나

볼품없음이

그대 임이겠네

 

 

 

고은 詩

순간의 꽃*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