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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물에 떠내려 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이렇게 시작해 보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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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들녘을

물끄러미 보다

한평생 일하고 나서 묻힌

할아버지의 무덤

물끄러미 보다

 

나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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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지가

얻은 밥 나눠먹고 있다

 

초승달 힘차게 빛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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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말하셨다

아주 사소한 일

바늘에

실 꿰는 것도 온몸으로 하거라

 

요즘은 바늘구멍이 안 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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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새끼 부를 때

새끼가 어미 부를 때

그 분주한 새소리

앞산의 다른 새들도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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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란 말이냐

복사꽃잎

빈집에 하루 내내 날아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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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가져보아라

적을 안다

적을 가져보아라

친구를 안다

 

이 무슨 장난인가

 

*

 

 

ㅡ고은 님의 순간의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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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淸道)가며/정일근

 

서지월 시인에게-

 

 

청도는 맑은 길, 그 맑은 길을 따라 좋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가을, 나도 덩달아 눈이 맑아진다. 길가에 나서 쭈그리고 않은 할머니들의 작은 광주리에 담긴 감홍시. 그 몇 알에 묻어나는 무심의 가르침을 나는 읽는다. 과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이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가지만, 누구도 아쉬워하거나 다음 차를 기다리지 않는다. 과속이 그들에게 삶이 아니듯, 느릿느릿 걸어 생의 가을에 닿아 감홍시처럼 늙어버린 사람들. 푸르고 딱딱한 감이 화엄 같은 불볕 여름을 견뎌 붉고 부드러운 순명에 닿듯, 세상의 법 가운데 자연의 법이 최고임을 그들은 이미 아는 것이다. 눈이 맑은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감 홍시 몇 알을 청할 것이니, 길가에 앉은 저 금강의 앉음새는 어떤 질주나 과속에도 무심할 것이다, 고 나는 적는다. 청도는 맑은 길, 좋은 친구도 스스로 익어 빛나는 가을과 함께 그 길 곁에서 나를 기다리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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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도종환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은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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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해/김용택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 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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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월하늘 / 김석규

     

    철새 돌아오는 때를 알아 누가 하늘 대문을 열어 놓았나.

    태풍에 허리를 다친 풀잎들은 시든 채 오솔길을 걷고

    황홀했던 구름의 흰 궁전도 하나둘 스러져간 강변

    시월하늘 눈이 시리도록 너무 높고 맑고 푸르러

    어디에 하늘 한 만 평쯤 장만할 수 있을지

    주민등록증하고 인감도장을 챙겨들고 나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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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없이 가을을 / 나해철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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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菊花피는 아침 / 강세화

    오래 뜸을 들여 힘들여서 피는 꽃을
    바람도 별도 차마 잊을 수가 없어서
    밤새워 뒤척이다가
    속이 시린 이 아침

    가슴을 서로 나누어 옮겨앉은 그늘따라
    안스러운 푸른 하늘
    그 한 자락 끌어다가
    조금씩 미어지는 듯 개화하는 마음아

    먼빛으로 익힌 하늘 맑게 뜨는 아침이면
    선뜻 나서지 않아도 필만치는 피어서
    감추어 비치지 않던
    순한 빛을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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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햇볕/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영이
댓글
2012.10.04 13:53:51

 

가을 햇볕이 좋습니다.

마당에 나가면 눈이 부셔 눈이 절로 찡그려집니다.

주름 조심해야 하는데...ㅎㅎ

 

귀엽님~~ 

안개님 마당님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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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다는 말의 긴팔 / 문인수

    그대는 지금 그 나라의 강변을 걷는다 하네.
    작은 어깨가 나비처럼 반짝이겠네.
    뒷모습으로도 내게로 오는 듯 눈에 밟혀서
    마음은 또 먼 통화 중에 긴 팔을 내미네
    그러나 바람 아래 바람 아래 물결,
    그립다는 말은 만 리 밖 그 강물에 끝없네

     

     

영이
댓글
2012.10.03 09:33:35

 

 

좋은 날~~

귀엽님 축하해요~~~!

 

 

 

김귀엽
댓글
2012.10.03 17:05:32

 

남편한텐 생일선물로 노트북 받았어요.

영이님께도 감사합니다.^^

 

추석엔 동생들이 챙겨줘서 미리 생일 축하받았습니다.

영이님도 두루 형제들 만나셨지요?

그래도 늘 엄마자리를 두리번 거리게 됩니다.^^

 

집을 며칠 비운 사이에 물을 듬뿍 주고 갔는데도 화분들이 시들시들~

집엔 사람이 있어야 생기가 도는 것 같아요.

 

 

마당
댓글
2012.10.04 07:24:35

조금 늦었습니다. 생일도 축하드리고 노트북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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