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

글 수 270
  • Skin Info

 

문서 첨부 제한 : 0Byte/ 50.00MB
파일 크기 제한 : 50.00MB (허용 확장자 : *.*)

c9b0e516999bc251014768b5f32c22f5.JPG

 

 

 

    섬 /문태준

    조용하여라
    저 가슴
    꽃 그림자는 물속에 내렸다
    누구도 캐내지 않는 바위처럼
    누구든
    외로워라
    매양
    사랑이라 불리는
    저 섬은

IMG_6252-1.JPG

 

 

유월에 쓰는 편지 / 허후남

 


내 아이 손바닥만큼 자란
유월의 진초록 감나무 잎사귀에
잎맥처럼 세세한 사연들 낱낱이 적어
그대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지독하고도 쓸쓸한 이 그리움은
일찍이
저녁 무렵이면
어김없이 잘도 피어나던 분꽃,
그 까만 씨앗처럼 박힌
그대의 주소 때문입니다

 

짧은 여름 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의
이야기와
갈참나무 숲에서 떠도는 바람의 잔기침과
지루한 한낮의 들꽃 이야기들일랑
부디 새벽의 이슬처럼 읽어 주십시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보내느니
아직도 그대
변함없이 그 곳에 계시는지요

 

 

IMG_6316-1.JPG

 

 

여름 / 오규원


강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집배원이
소변을 보고 있다
물줄기가 들찔레를 흔들면서 떨어진다
근처에 있던 뱀이 슬그머니
몸을 감춘다
강은 물이 많이 불었다

 


 

    3550f0abbf89351e6e3e7a97f5ffa33b.jpg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문태준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

    흐르는 물에 징검돌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갈 것

    저 풀밭의 여치에게도 눈물을 보태는 일이 없을 것

    누구를 앞서겠다는 생각을 반절 접어둘 것


2cf953de3743cbbe93a908d5e936b7fe.jpg

 

 

오후 / 오규원

 

 

아침에는 비가 왔었다

마른번개가 몇 번 치고

아이가 하나 가고

그리고

사방에서 오후가 왔었다

돌풍이 한 번 불고

다시 한 번 불고

아이가 간 그 길로

젖은 옷을 입고 여자가 갔다

 

 

 

    7707c1ff3897aea2a4a27c3a6238663c.jpg

     

     

    그대에게 물 한잔 /박철


    우리가 기쁜 일이 한두 가지이겠냐마는
    그중의 제일은
    맑은 물 한잔 마시는 일
    맑은 물 한잔 따라주는 일
    그리고
    당신 얼굴을 바라보는 일

 cats-1.jpg

 

층층나무와 길 / 오규원

 

 

바위 옆에는 바위가

자기 몸에 속하지 않는다고

몸 밖에 내놓은

층층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붉나무도

한 그루 있습니다

 

 

    8184.jpg

     

     

    화상花傷 / 복효근

    그저 무심히 어제처럼
    산길 모퉁이 돌아서는데
    풀숲에서 문득
    불인두를 들이대듯 후끈,
    솟은 꽃 한 송이
    채 인주를 닦지 않은 손도장
    어디서 스쳐가던
    내 청춘의 붉은 지문,
    너와 나 지고 갚지 못한 무슨 빚이 있어
    무슨 다 하지 못한 약속이 있어
    이 외진 길에 이리 다시 만나는 것이냐
    내 어딘가에도 묻어있을 네 지문을 찾듯
    나를 더듬는 눈빛
    나는 화상을 입는다
     
     

    8251.jpg

     

     

    초록 풀물/공재동

     

    풀밭에서
    무심코
    풀을 깔고 앉았다.

     

    바지에
    배인
    초록 풀물

     

    초록 풀물은
    풀들의
    피다.

     

    빨아도 지지 않는
    풀들의
    아픔

     

    오늘은
    온종일
    가슴이 아프다.

     

     

     

    6448.jpg

     

    산들 바람/ 최동호

     

              ―달마는 왜 동쪽으로 왔는가

     

     

     

    첫 새벽 시작한
    학과 공부에 등뼈 비틀던 경판들도
    학승들과 제 자리로 돌아간 다음

    노스님네 게걸음
    산보 어간에 대웅전 코끝을 까치가 간질러
    튀밥처럼 희게 쏟아지는 아침 햇살

    마당 귀퉁이에 폭포처럼 내려와
    나무이파리 흔드는 산들바람과 함께
    황금 햇살 펼치는 빗자루길 산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