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도종환

조회 수 1055 추천 수 0 2012.10.09 00:10:29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은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404 후렴 / 강현국 [3] 영이 2013-03-21 1369
3403 나무가 햇살에게 / 안상학 김귀엽 2013-01-12 983
3402 아름다운 회항 / 공광규 김귀엽 2013-01-11 838
3401 순간의 꽃 / 고은 김귀엽 2013-01-11 1522
3400 마침표에 대하여 / 복효근 김귀엽 2013-01-06 997
3399 순록으로 기억하다 / 류시화 김귀엽 2012-12-09 1059
3398 흙 / 문정희 김귀엽 2012-12-09 952
3397 밥해주러 간다/유안진 영이 2012-11-17 1057
3396 그대 집/박정대 영이 2012-11-14 1099
»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도종환 김귀엽 2012-10-09 1055
3394 실없이 가을을 / 나해철 김귀엽 2012-10-08 1033
3393 동구(洞口) / 문태준 영이 2012-10-05 954
3392 菊花피는 아침 / 강세화 영이 2012-10-05 1042
3391 단단한 고요 / 김선우 영이 2012-10-05 1208
3390 붉디 붉은 그 꽃을/나희덕 영이 2012-10-05 1102
3389 발자국 / 정호승 김귀엽 2012-09-24 1195
3388 선생님께 - 시바타 도요 김귀엽 2012-09-18 1145
3387 녹아드네 - 시바타 도요 김귀엽 2012-09-18 1158
3386 말 - 시바타 도요 김귀엽 2012-09-18 1112
3385 약해지지 마 - 시바타 도요 김귀엽 2012-09-18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