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조회 수 916 추천 수 3 2010.05.24 09:18:20
안개꽃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목을 길게 뽑고
두 눈을 깊게 뜨고
저 가슴 밑바닥에 고여 있는 저음으로
첼로를 켜며
비장한 밤의 첼로를 켜며
두 팔 가득 넘치는 외로움 너머로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올라
그 불 다 사그러질 때까지
어두운 들과 산굽이 떠돌며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 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 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달력 속에서 뚝, 뚝,
꽃잎 떨어지는 날이면
바람은 너의 숨결을 몰고와
측백의 어린 가지를 키웠다

그만큼 어디선가 희망이 자라오르고
무심히 저무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호명하는 밤,
나는 너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수없는 나날이 셔터 속으로 사라졌다
내가 꿈의 현상소에 당도했을 때
오오 그러나 너는
그 어느 곳에서도 부재중이었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 밑에서
불쑥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바람으로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3373 칠점무당벌레 / 송찬호 김귀엽 2010-11-13 919
3372 수평선 / 반칠환 김귀엽 2006-08-23 919
3371 신생(新生) / 이시영 영이 2011-03-15 918
3370 대비(大悲) / 배한봉 귀엽 2011-07-01 917
3369 나 혼자 자라겠어요 / 임길택 김귀엽 2011-01-21 917
3368 모닥불 / 백석 김귀엽 2011-01-18 917
3367 시치미 / 반칠환 김귀엽 2006-08-23 917
3366 시선 / 마종기 귀엽 2011-11-23 916
3365 점경點景 / 송수권 귀엽 2011-06-01 916
3364 천천히 가자 쉬어가면서 가자/나태주 영이 2010-11-04 916
3363 다시 술잔을 들며 / 정현종 김귀엽 2010-09-01 916
»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안개꽃 2010-05-24 916
3361 돌머리 물빛 / 송수권 귀엽 2011-06-01 915
3360 가족 / 윤제림 김귀엽 2014-11-14 913
3359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 file [2] 달팽이 2008-05-29 913
3358 편백나무 사이에서 / 김규태 귀엽 2011-06-22 912
3357 말없이 걸어가듯이 / 정현종 영이 2011-07-09 911
3356 고요에 바치네 / 김경미 김귀엽 2010-03-04 911
3355 아직은 바깥이 있다 / 황지우 김귀엽 2012-04-07 910
3354 성선설 / 함민복 김귀엽 2012-09-06 909